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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동리권번, 장기리권번_안성 경서남잡가 전승 계보

  • 관리자 (taemin)
  • 2021-03-13 1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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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디지털신문=김미연기자] 안성의 대표적인 권번은 동리권번과 장기리권번을 들 수 있다. 장기리권번은 변매화·이봉선, 동리권번은 송계화·고비연·강연화 등이 안성기예조합원들로 있으면서 활동했다고 전해진다. 또 안성의 가무악 기생들은 궁중 행사에 동원되어 기예를 펼쳤고 나중에는 방송 출연도 했다.

 

특히 동리권번 송계화·고비연은 1932년 1월 16일 수양유치원(秀養幼稚園)을 위한 남도일류명기음률대회(南道一流名妓音律大會) 때 출연했다. ‘三千里’(1936) 8권 8호에 나오는 ‘조선·한성·종로 삼권번(三券番) 기생 예도(藝道) 개평(慨評)’에 소개되었다. 1932~1940년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하여 고계공(高桂公)과 함께 ‘만고강산(萬古江山)’ 등 여러 곡을 방송했다.

 

 

▲ 조명숙 안성 경서남잡가 예능보유자 겸 보존회 회장.     © 선임기자 김태민


안성 경서남잡가 계보는 1대 송계화·고비연·강연화, 2대 손음전, 3대 손음전 딸 조명숙 순으로 이어져 왔고 현재는 4대째인데 서명주, 이상복, 정형숙, 전미선 등이 사사받고 있다.

 

고(故) 손음전 여사는 1917년생으로 충북진천에서 태어나 1920년에서 안성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어떻게 안성으로 온 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7살 때부터 봉남동(동리권번)에서 살게 되었다. 유년과 학창시절을 봉남동에서 지낸 손 여사는 집에 ‘이모’들이 많아 늘 같이 놀아 주어 자연스레 소리도 배우게 된다.

 

손 여사는 당대 최고의 유명 소리꾼으로 평판이 자자했다. 안성, 평택은 물론이고 공주나 여주까지 기차(경남철도 안성선)를 타고 움직였을 만큼 초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손 여사는 경기민요는 물론이고 경서남잡가 및 시조에도 뛰어났다. 바로 아래 동생인 고 손부용 여사는 민요와 춤을 아주 잘 추어 안성군 근교 도시 천안. 평택, 용인, 이천, 여주에서도 민요와 무용을 배우러 많이 찾아왔다.

 

▲ 안성경서남잡가 2대 손음전, 동생 손부영 여사 자매.    

두 자매는 경기권에서도 유명하여 당시 경찰서장 부인, 안성읍장 부인 등 안성의 유지급 인사들의 부인도 소리와 무용을 배우러 찾아오곤 했다.

 

한때는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어 평택으로 이사를 간 적도 있다. 쉴 틈도 없이 밤낮으로 찾아오는 학생들과 잔칫집 초청으로 잠조차 제대로 못 자 건강까지 나빠져 평택에서 학원을 하고 있던 후배가 권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간 지 1년도 못 돼 사람들이 찾아와 할 수 없이 안성 봉남동에 간판도 없이 학원을 열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4호 안성향당무 전수조교인 유청자씨는 안청중학교 다닐 때 조명숙 여사 집 담 너머로 민요수업 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고, 자기로 모르게 따라 부르다가 야예 집으로 불려 들어가서 공부를 한 적도 있다고 회상한다. 유씨는 당시 20명 정도가 수업을 받았고 옆 마당에서는 악기 연주하고 춤추던 언니들도 많았다고 한다.

 

동리권번에서 활동하던 분들이 많이 돌아가시고 부지가 일부 팔려 집이 두 채만 남고 다 헐리자 손 여사는 동리권번에 있던 나머지 분들과 장기리권번에서 활동하던 어르신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안성애향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활동했다. 1960년대부터 손음전 손부용 자매 그리고 딸 조명숙 이렇게 셋이 환갑집이나 대동계 같은 곳에서 소리하고 춤을 추며 지냈다.

 

2018년 경서남 잡가 안성향토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 조명숙씨는 1945년 안성에서 태어나 안성초등학교, 안성여자중학교, 안성여자고등학교까지 나온 안성 토박이다. 조 씨는 어머니 손음전 여사 뱃속에서부터 민요 소리와 악기 소리를 들으며 태어났다.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어머니에게 소리를 배우고 이모에게 무용을 배웠다.

 

안성아리랑, 경서남잡가, 시조 가사까지 공부

그래서였겠지만 조명숙씨는 자라면서도 소리가 좋고 귀에도 익어 학교 공부보다는 어머니한테 소리 배우는 데 열중했다. 그 후 어머니 소개로 서울로 올라가 현 국가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 산타령 예능보유자인 최창남선생한테 3년 정도 배웠다. 지금은 돌아가신 이창배, 안비취, 묵계월, 이은주 등 많은 선배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배우는 소리가 귀에 익은 소리도 아니고 어머니 소리가 그리워 고민하던 중 안비취 언니가 엄마 소리가 더 좋다며 그냥 엄마 옆으로 가라고 해 그길로 안성으로 내려갔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안성아리랑 외 경서남잡가와 시조 가사까지 공부하여 지금은 어느 장르 할 것 없이 다 부른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안성남사당보존회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 내혜홀 광장 근처에 가건물을 올리고 그곳에서 민요, 무용, 기악, 전통연희 등을 가르치고 공연연습도 하며 전국으로 안성남사당 공연을 하러 다녔다.

 

1997년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여 경복궁타령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조명숙씨는 공연을 다니면서 천상의 목소리라는 찬사도 받았다.

 

안성사람들은 조명숙 여사를 초립동이라고 하거나 마당쇠로 알고 있다. 남사당에서 줄곧 남장하고 소리와 무용을 했기 때문이다.

 

그 후 안성시립남사당 단원, 동아예술방송대학교 강사도 지냈다. 안성복지관에서 안성남사당보존회 일을 하면서 2005년도에는 경서남잡가 학원도 열었다. 지금 안성에서 활동하는 황연임 선생과 당시 안성국악협회 이경희 회장을 강사로 2년 정도 하다가 개인 공연 섭외가 많이 들어와 황연임 선생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일종의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지내 왔다.

 

조명숙 여사는 여생을 안성아리랑과 경서남잡가를 하며 살고 싶고 스승이자 어머니인 손음전 선생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또 안성경서남 잡가보존회 회원들과 특히 자신을 믿고 지금까지 곁을 지켜 준 서명주, 이상복, 정형숙, 전미선 제자들에게 감사하다며 앞으로 안성시민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 주고 싶다고 의욕을 밝힌다.

 

국악디지털신문 김미연기자 gugakpeople@gugakpeo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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