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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문학, 그 哀愁의 강물 _ 꽃보다 이쁜 그대는 누구인가

  • 관리자 (taemin)
  • 2021-01-28 18: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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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예술신문=김갑식 편집국장] 인류사나 종족사(種族史)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예로부터 우리 한민족이 풍류가 넘치는 정서가 특색을 이룬 민족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삶 자체가 역동적이고 희로애락에 쉽게 감응을 잘 하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현존하는 문화예술적 사료(史料)와 유적 그리고 각종 물품 등에서 그같은 증좌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기록물과 악기류 등을 살펴보면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정서적인 풍요로움을 누렸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특히 기록물로 평가받는 문학적 소산은 한문학권(漢文學圈)의 종주국인 중국보다 오히려 월등하다는 주장을 펴는 학자들도 있다. 한글 창제 이후 분출되었던 문학적 에너지까지 합산한다면 양적, 질적으로 방대하다는 시각이다.

 

우리는 지난호의 ‘아리랑’에서처럼 이번호부터는 고전문학의 큰 바다로 항해를 시작해 이른 바 ‘기녀 문학’으로 불리는 한 섬으로 다가가려고 한다.

한때는 푸르른 나무가 무성했을 그 섬, 해풍과 파도가 끊임없이 이어져 숱한 이야기가 해변의 모래알처럼 반짝였을 그 섬, 아아 우리가 닿을 그 섬에 빨리 가고 싶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기녀(妓女)는 누구인가. 기녀 문학을 쌓아올렸던 그 주인공들의 정체는?

기녀는 기생(妓生)으로도 불리는데 연회 등 행사나 모임에서 노래와 춤으로 여흥을 돋우는 가기(歌妓) 혹은 무기(舞妓)의 개념으로 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다.

 

▲ 성장(盛裝)을 한 관기. 비스듬한 시선의 그녀 표정에서 차분하고도 그윽한 정취가 느껴진다.  

 

기녀가 언제부터 있었는가는 아직도 논쟁거리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제24대 진흥왕 37년(576)에 처음으로 여자 화랑제도인 ‘원화(源花)’를 두었는데 서로 질투하다 살인까지 저질러 남자화랑으로 바꾸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의 원화를 기녀로 보기도 한다.

 

또 고구려의 창녀(娼女)에 기원을 두는 주장도 있고 고려의 양수척(揚水尺)이 그 시작이라는 설도 있다.

 

고려시대는 ‘교방제자(敎坊弟子)’라는 기록에 ‘수척(水尺)의 후예를 관(官)에 예속시켜 비(婢)로 삼으니, 이가 기녀(妓女)가 되었다’고 씌어 있다. 고려 태조가 삼한을 통일하자 백제유민 중에 수척[어부]을 노비로 삼아 각 관청에 예속시켰는데 그 중 색예(色藝)가 두드러진 여종[비(婢)]을 기생으로 삼아 단장한 뒤 가무를 연습시켰는데 이것이 고려 여악(女樂)의 시초라는 주장이다.

이렇듯 기녀는 차츰 춤, 노래뿐만 아니라 악기도 다룰 줄 아는 전문성 갖춘 예인(藝人)으로 대우받게 된다.

 

노래와 춤을 추는 가무기(歌舞妓)는 여기(女妓), 여악(女樂), 예기(藝妓), 성기(聲妓), 해어화(解語花)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들은 음악, 무용,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교양을 두루 갖춘 일종의 예능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매음(賣淫)을 업으로 삼는 창기(娼妓)의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창기는 창부(娼婦), 창녀(娼女) 등으로 칭했다.

    

관기가 딸을 낳으면 그 딸도 기녀로 살아가야

특히 가무를 익혀 나라에서 필요할 때 동원되던 여인을 기녀라고 불렀는데 관청에 소속되어 있는 관기(官妓)를 가리키며 신분상으로 천인(賤人)에 속했다. 조선시대의 경우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관원(官員)은 관기를 간(奸)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지방의 수령(守令)이나 중앙에서 내려온 고관(高官)들의 수청을 들기도 하였다.

 

▲ 과거의 눈으로 현재를 바라보는, 한 폭의 전신화(全身畵) 같은 사진 속의 기녀.   

 관기 제도는 조선조 말까지 이어졌으며, 딸을 낳아 나이가 들면 수모법(隨母法)에 따라 어머니의 신역(身役)을 맡게 했다. 기녀의 활동기간은 15세부터 50세인데 어린 기녀를 동기(童妓), 나이 든 기녀를 노기(老妓), 노기보다 나이가 많아 퇴역한 기녀를 퇴기(退妓)라고 불렀다.

 

관기는 경기(京妓)와 지방기(地方妓)로 나뉘어졌으며, 지방기 중에서도 자색이 뛰어나고 재주가 있으면 경기로 뽑히곤 했다. 경기 중에는 약방기생(藥房妓生)이니 상방기생(尙房妓生)이니 하는 기생도 있다. 조선시대에 관기를 둔 목적이 주로 여악(女樂)과 의침(醫針)이어서 의녀(醫女)로서도 활동하여 약방기생이라 하였다.

 

상방(尙房)에서 침구(鍼灸)나 재봉(裁縫)의 일도 맡아 상방기생이란 이름도 생겼다. 그러나 약방기생이나 상방기생은 고유 업무 외에도 각종 연회 등 크고 작은 행사에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

 

기녀는 최하층 천민이었지만 가무와 시서(詩書) 등에도 능한 높은 수준의 교양도 쌓았다. 경기의 경우 보통 15세가 되면 기적(妓籍)에 오른 뒤 장악원(掌樂院) 소속으로 소양을 배운다. 교과 과목은 가무, 서화(書畵), 대화법, 식사 예절 등 타인을 대할 때 필요한 종목이었다.

 

이들이 상대하는 부류가 주로 왕족을 포함하여 학문적 수준이 높은 사대부(士大夫)들이었으므로 예의범절은 물론 시문(詩文)에도 능해야 했다. 조선시대의 기녀 중에서는 관기뿐만 아니라 일반 창가(娼家)에 속한 사기(私妓) 중에서도 명기(名妓)가 많이 배출되었다.

 

남자들 세계에 ‘서생(書生)'이 있듯 여성 세계엔 기생(妓生)?

기녀와 같이 쓰이던 기생(妓生)이라는 말은 중국에서도 찾을 수 없는 우리식 한자어이다. ‘기(妓)'자에 ‘생(生)'이 붙은 말인데 어원을 살펴보기가 쉽지 않다. 다만 남자들 세계에 ‘서생(書生)'이 있듯 여성 세계에 기생이 있었던 것이니 의미가 조금은 세련되게 느껴지기도 한다.

 

▲ 기생들이 후원(後園)에서 가야금 수업을 받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기생이란 용어는 기녀에 대한 선조들의 시각마저 엿보게 해주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후대들은 기생이라는 말이 그리 고상한 의미로 전달되지는 않는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이 컸겠지만 기생이라고 하면 대개 일제시대에 성황을 이루었던 요정에서 기거하던 기녀들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여기(女妓)라는 말은 기녀와 같은 뜻을 지녔으나 흔히 쓰여진 말이 아니어서 기녀처럼 대표성을 갖지 못한다. 가기(歌妓), 무기(舞妓), 여악(女樂), 예기(藝妓), 성기(聲妓) 등의 말은 전문 예능인으로서 기녀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용어이다.

 

노랫소리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면 가기 또는 성기로 칭송을 받고, 춤사위가 아름다우면 무기로 일컬어지고, 가무(歌舞)에 두루 능통하면 여악 또는 예기로 평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어휘들은 기녀의 기능적 성격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개념일 뿐 기녀 가운데는 가기도 있고 성기도 있고 무기도 있고 여악도 있고 예기도 있는 게 아니겠는가. 이 개념들을 아우르는 말로 기녀(妓女)가 합당한 것으로 여져진다.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빗댄 ‘해어화’

취기 오른 조선의 선비들 기녀에게 남발한 듯

 구한말과 일제시대의 국학자 이능화가 펴낸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에는 꽃의 모습과 특질로 등급을 매기고 사람과 비유를 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모란화는 꽃 중의 왕이요, 해바라기는 충신이요, 연꽃은 군자요, 살구꽃은 소인이다. 국화는 은일사(隱逸士)요, 매화는 한사(寒士)요, 박꽃[匏花]은 노인이요, 패랭이꽃[石竹花]은 소년이다.

촉규화[葵花]는 무당이요, 해당화는 창녀이다. 배꽃[梨花]은 시객(詩客)이며, 홍도(紅桃)·벽도(碧桃)·삼색도(三色桃)는 풍류랑(風流郞)이다.’

 

해어화(解語花)란 표현은 자못 운치가 있다. 해어화란 글자 그대로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말로 차츰 미인(美人)을 뜻하는 의미로도 쓰였다. 유래는 당나라 때로 거슬러오른다. 따듯한 초여름의 어느 날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의 태액지(太液池)란 연못의 백련(白蓮)이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행렬이 연꽃을 감상하기 위해 이 연못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종의 눈에는 그 어느 것도 바로 곁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따라오지 못했다. 그래서 주위의 궁녀들을 돌아보며 "여기 있는 연꽃도 해어화보다는 아름답지 않구나"라고 말했다 한다. 원래 해어화란 천하절색 양귀비를 두고 한 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조선시대 선비들은 마음에 드는 기녀가 시와 풍류를 알아듣는다 하여 해어화라고 부르곤 했다고 한다. 아무리 선비들과 더불어 시문(詩文)을 주고받을 수 있는 문학적 재주를 지녔다 하더라도, 양귀비와 같은 절색의 기녀가 아니라면 해어화라는 칭송을 들을 수가 없을 텐데 취기가 오른 선비들의 ’용어 인플레이션‘이 작동된 것이 아닐까.

 

황진이, 계량 같은 ‘스타 탄생’도 줄 이어

창기(娼妓), 창부(娼婦), 창녀(娼女) 등의 용어에는 예능 종사자로서의 개념이 중심을 이루는 기녀(妓女)란 의미보다 몸을 파는 여자라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관기(官妓)란 말은 있어도 ‘관창(官娼)'이란 말은 없는 데서 보듯, 창기는 민간에서 사사로이 운영하는 창가(娼家)에 소속된 사기(私妓)이다.

 

창가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곳인지라, 경우에 따라서는 매춘(賣春)도 성행했던 게 아닐까. 현대 사회에서도 창녀란 말은 통용되고 있는데 이 용어는 기녀의 개념이 완전히 묻힌 채 오로지 매춘녀(賣春女)란 의미로 고정되고 말았다.

 

물론 창기 출신 중에서도 송도(松都)의 황진이(黃眞伊)나 부안(扶安)의 계랑(桂娘) 같은 명기(名妓)가 많이 배출되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일반적인 창기와는 격을 달리하는 예기(藝妓)들이었다. 전문 예능인으로서 그녀들의 위상을 존중하려면 기녀(妓女)라는 보다 보편적인 용어를 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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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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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리랑 2021-01-29
    귀한 글 감사합니다
  • reply 관리자 (taemin) 2021-01-29
    감사합니다. 앞으로 많은 자료가 올라 갈 예정이며 또한 월간 국악예술세계에도 실려 있습니다.
  • reply 지나가다가... 2021-01-31
    사진 속 악기는 가야금이 아니고, 거문고 아닌가요?^^

    사진글 소개 악기가 틀려서요 수정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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