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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사 대표기자 김태민]28년 동안 한국민속극박물관(공주, 관장 심하용) 선반 위에 보관되어 있던 트렁크 안의 앨범과 다수의 찢어진 사진을 연구 자료로 제공받은 것을 계기로, 장홍심 연구에 뜻을 두었던 제자 이지현 박사(춤비평가, 초등학교 시절인 75년-78년 사사)와 불교미술사가 최선일 박사는 <장홍심무용연구회> 결성하고 오는 3월 14일 오후 1시 30분 제1차 창립 학술 강연을 주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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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권번 시절의 기생에 대한 연구를 공유하며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예인과 잊혀진 기생에 대한 학제간 연구를 준비하던 이지현 박사와 최선일 박사는 장홍심 선생님(1915-1994)의 새로 발견된 유품 사진이 다수 찢어진 형태로 발견된 것을 복원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 전통 ‘예인’에 대한 편견과 저평가의 현실을 마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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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1938.5.2.조선일보에서 발췌 (참고용) 중: 40년대 이전으로 추정되는 찢어진 사진 우: 1984년경 찢어진 신문기사 © 국악가요신문 |
특히 장홍심 선생님의 연구는 일제강점기 함흥권번 시절 활동은 거의 다뤄진 바가 없고, 1937년 한성준선생과 함께 발기인으로 참여한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활동 역시 1942년 한영숙선생이 한성준선생의 후계자로 대외적으로 지목되면서 큰 물결에 휩쓸려 사라진 장면처럼 춤 실력과 존재감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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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범태 작가 사진『한국춤백년 1』, 2006) © 국악가요신문 |
1967년 피난지 부산에서의 16년 동안의 시간을 정리하고 서울로 뒤늦게 올라오게 되면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였기에 노년의 활동은 서대문과 중곡동의 장홍심무용연구소에서의 교육에 집중되었고, 1984년 제11회 한국명무전에 초대되면서야 처음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그 후 1993년, 돌아가시기 1년 전에 명무전에 다시 한번 초대되나 공연 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연구소 안의 쪽방에서 지켜보는 이 없이 삶을 마감하게 된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을 선생님의 찢어진 사진들은 30년 만에 현재 우리의 시간에 찾아와 무슨 말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매회 학술 발표 뿐 아니라 인터뷰어를 초청하여 진행될 강연의 형식은 제1차 학술 강연(2026.3.14. 대학로 예술가의 집 세미나 1실)에서는
<강연 1> 장홍심 유품사진의 새로운 가치 : 이지현 (장홍심무용연구회 회장)
<강연 2> 명무 장홍심을 만난 사람들(1) : 1991년 장홍심선생을 인터뷰 했던 민속학자 이자균(한국민속연구소 대표)
<강연 3> 오랜 시간 기다려온 장선생님의 유품 이야기 : 심하용(한국민속극박물관 관장)이 유품이 민속극박물관에 오게 된 경위와 사연을 전할 예정이다.
특히, ‘박인숙’(60년대 중반 생으로 추정)이라는 일반인 제자가 유품을 4년간 보관하다가 심우성선생의 박물관으로 들고 온 장면을 기억하는 심하용관장의 이야기는 장홍심선생님의 삶과 관련된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회는 연구회의 활동이 박인숙씨 행방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선생님의 대표 연목이라 할 수 있는 ‘바라승무’는 현재의 승무와는 다른 형태로 승무의 후반부에 바라를 들고 추는데 실질적 의미에서의 유일한 보유자인 장홍심 선생님을 연구하지 않고서는 불교 의식무의 영향과 권번 승무의 상관관계를 밝히기 어려운 춤이기에 앞으로 연구의 중심이 될 예정이다.
오랜 시간 기다려 온 유품 사진 공개와 함께,근대사의 격동 속에서 춤으로 한 평생을 살아가신 장홍심 선생님의 발자취와 예술적 가치를 함께 돌아보는 자리에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 문의처
장홍심무용연구회 공동회장 이지현 010-9652-5578
공동회장 최선일 (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소장) 010-8158-5620
김태민기자 kgptv@naver.com
출처: 권번 예인 ‘장홍심’, 찢어진 사진 발견으로 장홍심무용연구회 결성과 연구에 박차-국악신문사 - https://www.gugakpeople.com/10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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