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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이 현대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경남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에 위치한 ‘당말리산’과 이곳에서 거행되는 ‘당말리 당산제’의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학계와 문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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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말리 당집(신당) © 국악신문사 |
당말리산이 위치한 수산리(守山里)는 과거 고려 시대에 설치된 ‘수산현(守山縣)’의 읍치(고을의 중심지)가 있던 유서 깊은 터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기록에 따르면, 이 지역은 본래 ‘천산부곡(穿山部曲)’이었으나 고려 명종 대에 수산현으로 격상되었으며 달리 ‘은산(銀山)’으로도 불렸다. 이처럼 오랜 행정적·문화적 역사를 지닌 수산리의 중심에는 지역민의 영적 안식처이자 전통 신앙의 터전인 당말리산이 자리하고 있다.
‘당말리’ 지명에 숨겨진 고대 언어학과 신앙의 비밀
통상적으로 산 정상에 당집(신당)이 있는 경우 ‘당산(堂山)’이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왜 이곳은 ‘당말리산’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고대 언어학과 문헌학적 분석은 흥미로운 해답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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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연구에 따르면 당말리산의 ‘말리’는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栗旨里)의 옛 우리말 이름인 ‘밤마리’의 ‘마리’와 어원을 같이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등장하는 수로왕의 탄생지 ‘구지(龜旨)’의 사례처럼, 한자 ‘지(旨)’는 고대 산봉우리와 산령(山嶺)을 뜻하는 우리말 ‘ㅁᆞᄅᆞ(마루·모로)’의 차자 표기로 쓰였다. 즉, ‘말리’는 곧 높은 산마루를 뜻한다.
더 나아가 거북 ‘구(龜)’ 자의 옛 훈(뜻)이 ‘검’이었다는 점에 주목하면 그 신성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고대 사회에서 ‘검’ 혹은 ‘곰’은 신(神)을 통칭하거나 대지의 어머니인 ‘지모신(地母神)’을 의미했다. 결과적으로 ‘당말리’라는 지명은 단순한 지형적 명칭을 넘어, 고대부터 이어져 온 ‘신령스러운 신(검)이 계시는 산마루(말리)의 당집(당)’이라는 깊은 신앙적 배경을 품고 있는 것이다.
※ 지명 어원 요약
당(堂, 신당) + 말리(ㅁᆞᄅᆞ → 산마루/신성한 고개) = 신령스러운 산마루에 깃든 신당
단오에서 삼짇날로… 밀양 유일의 대규모 당산제
이러한 신성한 터전에서 열리는 ‘당말리 당산제’는 밀양 지역 내에서 단일 마을 단위를 넘어선 가장 큰 규모의 당산제로 손꼽힌다. 하남읍의 당산신은 강릉단오제와 마찬가지로 국사당산(국사선황)을 모시는 격 높은 신앙이다. 본래 음력 5월 5일 단오에 거행되었으나, 바쁜 농사철을 피하자는 주민들의 뜻 모음에 따라 현재는 음력 3월 3일 삼짇날에 제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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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말리 당산제는 약 40년 전 내서와 동명중 인근의 당산, 그리고 당말리산 당의 ‘삼신(三神)’을 합수(合水)하여 대규모로 거행되며 읍민들이 한데 모여 화합하는 축제였다. 그러나 이후 약 30여 년간 명맥이 끊기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소멸 위기에 처했던 전통을 다시 살려낸 것은 지난 2003년, 천신암(혜심)의 주도적인 노력이 있으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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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에는 사사로운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의 시선도 있었으나, 뜻있는 이들이 모여 ‘천신암당말리산당산보존회’를 결성하고 순수한 문화재 복원의 의미를 살리면서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회복했다.
벽사진경(辟邪進慶)의 정신과 현대적 공존의 과제
오늘날 하남읍 당산대제는 사귀를 쫓고 경사로운 일을 맞이한다는 ‘벽사진경’의 전통적 가치를 계승하는 동시에,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잔치를 겸하며 주민 화합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당말리산보존회 측은 당산제의 문화재적 가치를 발굴하고 체계적인 연구와 복원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다.
그러나 풀어야 할 숙제도 남아있다. 현재 당말리산 일대가 공원화되면서 현대적인 공연장 위주로 개발되어, 과거 당산이 가졌던 특유의 신성한 분위기와 전통적 공간감이 다소 퇴색되었다는 아쉬움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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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신암 혜심 © 국악신문사 |
보존회 관계자는 “당말리산은 고대 언어학과 지모신 신앙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우리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며, “이미 조성된 현대적 공간 속에서 전통의 영성(靈性)과 현대적 실용성이 상호 공존할 수 있는 묘안을 찾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최선의 노력이자 과제”라고 강조했다.
전통의 맥을 잇는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당말리산의 푸른 숨결과 함께 앞으로도 세대를 넘어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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